연잎의 맑은 향취를 그리움과 섞어 만끽한다.
연꽃차는 체액을 맑게 하고 심신을 가라앉히기에 좋다.
추억을 되새기는 지금 상황에 마시기 적당한 음료였다.
“좋은 친구네요.”
연화의 이야기를 들은 여인이 엷은 웃음을 띄웠다.
“…잊을 수 없는 애죠. 어리광이 많긴 했지만.”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좋아해요. 진흙탕에서 자라나도, 물들지 않는 꽃이 있죠. 당신을 말하는 거랍니다.”
낯선 칭찬에 연화가 미적지근한 웃음을 뱉고선, 간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끝으로 갈수록 연분홍색으로 물들어가는 긴 머리. 차분한 눈매와 황금색 눈, 조용하지만 무게감 있는 목소리.
살결 하나 내비치지 않는 큼직한 백의에는 연한 빛의 꽃잎이 가라앉아 있다.
여성은 플라워의 주축을 담당하는 인물이라기엔 너무 앳된 인상이었다.
【 플라워 제 4위 간부 :: 연꽃·파드메 】
【 Lotus · Padme 】
【 진흙 속에 피는 꽃 】
암운이 깃든 세계를 개혁하기 위해, 교단의 뜻을 오역하고 경전으로부터 눈을 돌린 자.
과거 총대주교 중 일인이었던 그녀는 세계수의 성인임과 동시에 신의 뜻을 거역한 반역자였다.
“……그래서.”
연화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흑단이가, 왕의 다리 밑에 있다 이 말씀인지.”
확인 됐고. 분명하다.
성녀의 견문이 이런 부분까지 밝혀낼 줄 누가 알았으랴.
벗어놓은 농수, 건틀릿을 손에 쥔 연화가 눈을 감고 한숨을 뱉었다.
【 플라워 제 4위 부간부 :: 연화 】
Lotus Tree.
학명이 없는 환상의 수목.
탈색된 머리는 붉게 달아오르고, 마력 기관은 조정되었으며, 유전자에 각인된 수목의 인자는 완성되었다.
불완전한 목인인 흑단과는 달리 플라워의 모든 기술이 집대성된 완전체.
본래였다면 반역으로 해체될 예정이었던 연화는 운이 좋게 파드메의 눈에 들어 그녀와 함께했다.
당시에는 반발심만 들었지만, 다 옛날 이야기다.
플라워의 방식과 사상은 이해하지 못하는 걸 넘어, 이따금 불쾌함까지 안겨주었으나 파드메의 정성어린 보살핌이 끝내 연화의 마음을 흔든 것이었다.
연화는 짧게 말을 정리했다.
“그래서. 저보고 흑단이를 설득하란 말씀이지요?”
“가능하다면요. 플라워는 이미 왕의 대척점에 서 있으니 양립할 수 없는 세력에 친우가 있다면…. 선택을 해야겠죠.”
선택해라.
어느 한 쪽이 죽거나, 혹은 배신하거나.
연화는 사정이 있어 파드메와 떨어질 수 없으니, 흑단이 제 발로 플라워에 들어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흑단이가 살아 있었구나.”
“기쁜가요?”
“당연히 기쁘죠.”
처음 보는 연화의 들뜬 얼굴에 파드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흑단이가 살아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하지만 이어 뒷골을 당기게 만드는 걱정거리 하나.
“설마 흑단이가 해코지를 당하진 않았겠죠…?”
“그건 모르는 일이지요.”
목령왕의 과거가 워낙 좀, 휘황찬란하지 않는가.
요즘에도 플라워의 여성 요원들이 이유를 불문하고 사라지는 일이 있었다.
연꽃, 파드메가 전전긍긍하는 연화의 모습에 걱정하지 말라는 듯 티팟을 들어 잔을 채워주었다.
-조르륵.
“왕에 대한 소문은 일부 사실이지만, 왕은 그리 엇나간 인간은 아니에요. 저와 서있는 곳이 다를 뿐이죠.”
“……그런가요.”
만약 흑단이가 충분히 좋은 환경에 놓인 상태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직접 마주하
스타베팅 풀고 싶지만…. 소식을 전해 어느 한쪽이 불행해질 거라면 차라리 알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가정과는 다르게 만약 긍정적인 방향이 아니라면?
오싹한 상상을 억누른 연화가 본래의 임무를 상기하며 떨떠름한 감정을 죽였다.
“뭐…. 그래도 중요한 건 이곳을 지키는 거죠. 여기 온 이유가 그것 때문이기도 하고.”
24시간 중 하루도 빠짐없이 실험이 이어지는 이곳.
연구소는 플라워의 미래를 책임지는 핵심지구 중 한 곳이다.
파드메와 연화를 비롯한 플라워의 주축이 왕과 세계수의 출정을 예측하고 요새를 구축하고 있었다.